엔트리게임 파워볼중계 엔트리게임 홈페이지 주소

제넥신 1상 진행..”내년 3월 해외 3상, 9월 승인 신청 목표”
SK바이오사이언스·진원생명과학 1상 신청
셀리드·스마젠,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백신 개발
개발 단계 높아질수록 해외 임상 실행력 중요

[서울=뉴시스] 코로나19 참고 이미지 (사진=지멘스 헬시니어스 제공)
[서울=뉴시스] 코로나19 참고 이미지 (사진=지멘스 헬시니어스 제공)

[서울=뉴시스] 송연주 기자 = 글로벌 제약사들보다 속도는 늦지만 국산 코로나19 백신들도 개발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파워볼사이트

대규모 피험자를 필요로 하는 임상 3상을 진행하려면 코로나19가 창궐한 곳이어야 해서 해외 임상을 진행할 실행력과 해외 데이터 확보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제넥신이다. 제넥신은 지난 6월 코로나19 백신 ‘GX-19’의 임상(1·2a상)을 승인받은 후 현재 1상을 진행 중이다. 1상에선 건강한 사람을 상대로 약물의 안전성을 검증한다.

당초 40명을 대상으로 전기천공기를 사용해 진행하다가 무바늘 주사기를 사용한 20명 연구를 추가했다. 제넥신의 후보물질은 DNA 백신이다. 근육 세포에 약물을 주입한다. 따라서 주입 시 필요한 전기천공기 혹은 전기충격도 없고 바늘도 없이 압력으로 근육에 투여하는 무바늘 주사기를 모두 사용해보는 것이다. 둘의 데이터를 비교한 후 2a상에 사용할 투여방식을 선택할 예정이다.

DNA 백신은 독성을 약화 혹은 불활화시킨 바이러스를 몸에 주입하는 기존 백신과 달리 항원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체에 투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항원)을 만들어 내도록 재조합한 DNA를 인체에 주입한다.

제넥신 관계자는 “현재 1상의 환자 투약과 채혈을 마치고 데이터 분석을 마무리하는 중”이라며 “조만간 2a상에 진입하는 동시에 3상을 설계해 내년 3월께는 해외 3상에 진입할 예정이다. 내년 9월엔 판매 승인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진원생명과학 1상 신청

SK바이오사이언스와 진원생명과학은 식약처에 제출한 임상 1상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두 업체는 연내 임상1상 돌입을 기대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달 7일 식약처에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 1상시험을 신청했다. 앞서 이 회사는 지난 3월 코로나19 합성항원 백신의 후보물질 발현에 성공하면서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과 협력을 시작했다. 빌 게이츠가 이사장으로 있는 빌&멜린다게이츠재단에서 44억원을 지원받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이다.

SK는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선별하고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합성하는 단백질 재조합 백신을 개발 중이다. 항원을 기술적으로 합성해 체내 투여함으로써 면역반응을 이끌어내는 합성항원 백신이다.

이달 초 임상 1·2상을 신청한 진원생명과학도 DNA 백신(코드명 GLS-5310)을 개발 중이다. 승인되면 고대 구로병원 외 4개 임상기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회사는 다른 코로나 백신보다 예방 효능을 높이기 위해 스파이크 항원 이외에 1개의 항원을 추가했다.

◇셀리드·스마젠,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백신 개발

셀리드도 코로나 백신(AdCLD-Cov19)을 개발 중이다. 영장류 시험결과 항원특이적 항체반응과 높은 수준의 항체 중화능력을 확인했다.

이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에 기반하고 있다. 바이러스 벡터 백신의 작용 기전은 이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항원 유전자를 제조한 후 이를 아데노바이러스에 넣어준다. 아데노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항원 유전자를 인체 세포 내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이후 바이러스를 증식시켜 정제 후 바이알에 담아 제품화하는 과정이다.

사람이 이를 접종하면, 인체 내로 들어온 백신의 항원 성분들이 B세포를 자극한다. 자극된 B세포에서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는 중화 항체를 만들어 몸속에 보관한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침입했을 때, 몸속의 중화 항체가 침입한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기전이다.

지난달 셀리드는 LG화학과 개발 및 대량생산·상업화를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LG화학은 셀리드에 이어 이달 스마젠과도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LG화학은 스마젠이 보유한 ‘VSV 벡터 시스템’을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생산·상업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VSV 벡터 기술은 아데노바이러스를 바이러스 벡터(운반체)로 이용해 인체에 항체가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 밖에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CEVI 융합연구단에서 백신 후보물질을 들여와 융합단과 전임상 등 공동 연구에 돌입했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16일 취임 기념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식약처장 부임 후 첫 과제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하루 빨리 앞당기는 것”이라며 “국산 백신은 해외의 백신 개발과 상당한 시간차가 있어 빨라야 내년 말쯤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ngyj@newsis.com

신천지 탈퇴한 前 신도 16일 수원지법 법정서 증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16일 오후 재판 출석을 위해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16일 오후 재판 출석을 위해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4년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몸담았던 신도가 이만희(89) 총회장의 재판에서 “신천지 교리에 세뇌된 신도들 사이에서는 이만희를 하나님과 똑같이 생각한다”고 증언했다.파워볼

16일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11차 공판에서 신천지 유관단체인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전 사무총장 A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A씨는 이날 이 총회장과의 대면을 거부하고 법원 내 별도의 증언실에서 비디오 중계 장치를 통해 증인신문에 참여했다.

A씨는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신천지 신도였으며 한때 HWPL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하나님-예수님-이 총회장’ 순서로 나타나 있는 신천지 위계질서 도표에 대해 “신천지 내에서 이만희의 말은 하나님의 말과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신천지의 전도 방법에 대해 “섭외 과정을 거쳐 복음방에 데려온 이들을 1대1로 공부하도록 만든다”며 “6∼8개월 과정을 거치면 처음에는 신천지에 대해 경계했던 사람도 세뇌로 인해 교리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A씨는 “신천지 내 모든 사안은 이만희에게 보고하게 돼 있으며, 그의 지시 없이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증언했다. 이 총회장의 혐의와 관련해 “별도의 보고나 지시가 없었다”는 취지로 앞선 재판에서 증언한 신천지 관계자들의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 총회장은 신천지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2월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 방역 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해 보고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 총회장은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50억여원의 교회 자금을 가져다 쓰는 등 56억원을 횡령하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 해당 지자체의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도 받고 있다.엔트리파워볼

이 총회장은 지난 12일 법원의 보석 허가로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그는 지난 8월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이후 이날 처음으로 불구속 상태로 법정에 출석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뉴스데스크] ◀ 기자 ▶

시민들의 불안감은 사실 조두순 한 명을 향한 게 아닐 겁니다.

성범죄자가 또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과연 사회는 시민을 보호할 시스템과 의지가 있는가, 불안의 근본적 이유일텐데요.

또 다른 조두순, 혹은 조두순보다 더한 위험들을 여전히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두순과 똑같이 아동성폭력으로 감옥에서 12년을 살고 출소한 박 모 씨의 사례를 통해 윤수한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

◀ 리포트 ▶

조두순이 8살 아이를 끌고 가 성폭행했던 2008년, 바로 그 해 서울 강남에선 중학생 6명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박 모 씨가 붙잡혔습니다.

청소년만 골라 범행했는데, 재판 과정과 판결이 묘하게 조두순 사건과 닮았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는 조두순처럼, 박 씨도 뇌수술 전력을 내세웠습니다.

법원이 이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여 형량을 깎아준 점도 조두순 재판과 같았고, 공교롭게 형량마저 징역 12년으로 같았습니다.

조두순보다 앞선 올 봄 만기 출소한 박 씨, 또다시 13살 중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12년을 복역하고 나온 지 불과 8일만이었습니다.

[유동훈/서울 수서경찰서 경사] “피의자가 착용 중인 전자발찌 이동 경로 추적을 통해서 범행 3일만에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게 된 것입니다.”

전자발찌는?

범행 당시 박 씨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집 바로 근처에서 범행을 저질렀는데,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하는 전자발찌는 주거지 행동 반경에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범죄 재범의 절반 이상이, 거주지 반경 1킬로미터 안에서 이뤄지는데, 전자발찌로는 막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생활 공간을) 이탈하게 되면 보호관찰소가 개입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지역 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범행을) 모르죠.”

1대1 밀착감독은?

재범 위험성이 높은 아동 성범죄 전력자를 일대일 밀착감시하는 제도도 도입됐지만 박 씨는 전담 관찰관이 없었습니다.

밀착 감시 대상인지 심사를 해 볼 겨를도 없었다는 겁니다.

[법무부 관계자] “(출소) 8일 만에 재범을 했기 때문에 1대1 지정을 신청하고 심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동 성범죄의 재발 위험성이 극도로 높은 경우엔 출소 전 미리 심사할 수 있는 내부 지침이 있는데도, 정작 박 씨에게는 아무런 사전 조치가 없었습니다.

출소 이후의 밀착감시가 미리 결정된 건 언론 주목을 받는 조두순 한 명뿐입니다.

[배상훈/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저는 조두순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응 연습, 꾸준한 훈련, 반복적 훈련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고질적인 인력부족

만약 박 씨가 일찌감치 1:1 밀착감시 대상으로 지정됐다면,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재범 위험성이 높아 밀착감시가 결정된 아동 성범죄 전력자 중 88%, 168명에 대해 아직 전담관을 배정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대일 밀착감시는커녕, 전자발찌를 찬 일반 성범죄 전력자 감시에도 일손이 달려, 1명이 17명을 맡고 있는 상황.

박 씨에게 일대일 전담관을 배정하면, 다른 전자발찌 착용자 17명에 대한 감시가 구멍 나게 됩니다.

[한상경/법무부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 과장] “(밀착감시 대상자) 192명을 모두 1대1 전자감독자로 지정을 해버리면 나머지 전자감독 대상자를 거의 다 포기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전담보호관찰관 인력이 그렇게 되지 않거든요.”

조두순의 충격 이후 달라진 점도 없지 않습니다.

출소 8일 만에 재범한 박 씨는 이번에도 재판에서 또다시 뇌수술에 따른 심신미약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박 씨가 논리 있게 자신을 변호하는 등 사리 분별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징역 18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기억 안 난다”는 변명은 이제 안 통하게 됐고, 전자발찌 착용도 당연시 됐습니다.

동네에 사는 성범죄 전력자도 공개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작년 83명, 작년 55명이 전자발찌를 찬 채 성범죄를 또 저질렀습니다.

법이 정한 죗값만 치르면 사회로 돌아와 활보하는 우리 주변의 얼굴 없는 조두순들, 안심하고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조두순은 12년 만에 다시 묻고 있습니다.

MBC뉴스 윤수한입니다.

(영상취재: 김경락, 전승현, 노성은 / 영상편집: 문명배)

MBC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윤수한 기자 (belifact@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973267_32524.html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이승만 정권에서 소신 지킨 제2대 검찰총장 김익진

[김종성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임명식이 있었던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도 하게 되고, 그 다음에 권력의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그런 길”이라고 말했다.

임명권자로부터 이런 주문을 받지 않고도 살아 있는 권력과 용감히 맞서 싸운 검찰총장이 있었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였던 1987년 6월항쟁 이전 시기에 총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뒤의 제2대 검찰총장인 김익진(1896~197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그가 총장에 임명된 다음날 발행된 1949년 6월 7일 치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에 그의 약력이 소개됐다.

본적 충남 부여군 구룡면 논시리 240. 단기 4250년(서기 1917년) 경성전수학교 졸업. 4250년 임(任, ~에 임명되다)재판소서기. 4253년(1920년) ‘임’평양지방법원판사. 4260년 동(同) 지방법원을 퇴직. 4260~해방까지 평양에서 변호사를 개업함. 4281년(1948년) 3월 서울서 변호사 개업. 4281년 11월 ‘임’대법관.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사립 법률학교인 경성전수학교를 21세 때 졸업한 김익진은 그 해에 법원 서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4세 때는 특별임용시험을 거쳐 평양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7년 뒤 퇴직한 뒤부터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7년간의 일제 판사 경력 때문에 친일 여부를 의심할 수도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변호사 시절의 김익진은 일종의 인권 변호사였다.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법률을 통해서도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했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각종 시국 사건에서 그는 변호사로 등장했다.일례로, 일제가 일으킨 공안사건인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흥사단 사건) 때도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도산 안창호 등이 검거된 이 사건에서 김익진은 김병로 변호사(김종인 할아버지) 등과 행동을 함께했다. 1964년 1월 17일자 <경향신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추억’에 이런 대목이 있다.

흥사단 사건은 예심을 거쳐 당시의 고등법원까지 올라가는 동안 전후 5개년이 걸렸는데, 가인 선생은 이인·김익진 기타 몇 분과 함께 무료로 3심을 통해 시종(始終) 변호를 맡아주셨다.

위의 <동아일보> 기사에는 해방 때까지 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48년에 서울로 영업 무대를 옮겼다고만 언급돼 있지만, 두 시기 사이에도 사연이 매우 많았다.

해방 직후에 그는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 평양 지부에 참여했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건준을 해체한 뒤에는 좌·우파가 연합한 평남인민정치위원회에서 부위원장 겸 치안부장으로 활동했다.

1945년 11월 조만식이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자 김익진은 거기에 가세해 총무부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1946년 연초에 조만식이 신탁통치를 반대한 뒤 행방불명(실제는 호텔 연금)되고 조선민주당 간부들이 체포되는 일이 있었고, 그 후에 김익진은 38선과 서울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여곡절을 거쳐 1948년 11월 남한 대법관이 된 그는 이듬해 6월 6일 문제의 제2대 검찰총장 자리에 임명됐다. 미군정 시기인 1946년 12월 대검찰청으로 개칭되기 전까지 이 기구는 ‘대법원 검사국’이었다. 법원과 검찰이 미분화된 시기를 살았던 당시 사람들한테는 대법관 김익진이 검찰총장에 취임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신임 검찰총장인 김익진이 정권 안정에 기여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가 공산주의 세력에 밀려 월남한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경찰 파워가 검찰을 능가했고 이승만 정권도 경찰을 더 신뢰했지만, 그래도 정권 입장에서는 검찰의 협력이 당연히 필수 불가결했다.

친일청산과 분단반대 등을 외치며 이승만 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을 경찰이 잡아오면 이 사람들을 판사 앞에 데려가 구형해줄 사람들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검찰의 역할도 긴요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 정권 때문에 월남한 김익진이 그런 역할을 잘해주리라 믿었다.양심과 소신

▲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익진 제2대 검찰총장(왼쪽 하단).
ⓒ 대검찰청누리집

이승만은 그에게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라’는 당부는 하지 않았다. 김익진은 주문받지 않은 그 사항까지도 훌륭하게 이행했다. 살아 있는 이승만 정권 앞에서도 양심과 소신을 굳건히 지켰던 것이다.

김익진은 멀쩡한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벌하는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반민족적 행태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직접 개입한 용공조작 사건에 대해서까지 엄정한 태도를 견지했다. 사법 기능이 반공 이념에 예속되는 반공사법을 기대했던 이승만의 구상을 정면으로 거슬렀던 것이다.2006년에 <법사학(法史學) 연구> 제34호에 실린 문준영 부산대 교수의 논문 ‘헌정 초기의 정치와 사법’은 “반공사법에 내포되어 있던 정권안보 사법의 성격이 노골화되면서 대통령과 검찰총장 사이에 대립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며 “그중 하나가 1950년 4월 발생한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논문은 사건 개요를 이렇게 요약한다.

경무대에 줄을 댄 정치브로커 김태수·김낙영 등이 ‘공산 게릴라가 봉기하여 경무대를 습격하고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 한다’는 날조된 정보를 보고한 뒤,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사설 수사기관을 만들고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공산당으로 몰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이승만은 ‘사건을 건드리지 말라’고 특명을 내렸다. 하지만 김익진은 듣지 않았다. 김익진 검찰총장은 권승렬 법무부장관 및 서울지검장과 손잡고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섰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김태수의 허위 정보에 참모총장·헌병사령관·내무부장관·치안국장서리 등이 놀아났다. 첩보가 입수된 뒤, 검찰이 수상히 여겨 수사하려 하였으나 대통령의 측근이 수사(받는) 중이므로 ‘검찰은 이 사건에 일체 관여하지 말라’는 특명이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권 장관과 김 총장은 대통령의 특명에도 불구하고 서울지검의 정보부 검사를 수사에 투입하여 1950년 4월 정치공작대원 108명을 검거하였다. 김 총장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직접 지휘하여 수사·기소하도록 지시하였다. 5월 19일 정치공작대장 김태수 등 11명이 기소되었다.

김익진이 얼마나 용감했는가는, 대통령의 친서를 무시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회답을 보내 공정수사 의지를 천명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을 기소하지 말라’는 친서를 보냈으나, 담당 검사들이 소신껏 기소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김 총장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현행법상 불기소처분이 불가능하다는 회답을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고 위 논문은 설명한다.미국에도 맞서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깃발이 날리는 모습.
ⓒ 이희훈

김익진이 맞선 ‘살아 있는 권력’은 이승만 정권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싸움은 ‘살아 있는 세계권력’ 미국에도 맞서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용공조작은 동북아에서 냉전정책을 전개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김익진이 맞선 권력은 더 있었다. 그는 반공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세력의 요구에도 부응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맞서면서도 기득권층에게는 맞서지 않으려는 검사들이 대한민국에 수도 없이 많지만, 김익진은 대통령뿐 아니라 기득권층의 사익도 정면으로 무시했다. 전남도경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됐는데, 그를 풀어달라는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싸운 일화도 전해진다.

용공조작에 담긴 미국·기득권층·이승만의 욕망을 몰랐을 리 없는 김익진은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 공산주의 때문에 고향에서 밀려났다는 사적인 감정도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법조인과 검찰총장의 자세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이런 검찰총장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면, 대한민국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총장이 이승만 정권 하에서 자리를 오래 지킬 수는 없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이런 총장에게 2년 정도의 넉넉한 재임도 보장되지 않았다.

결국 김익진은 보복성 인사를 당했다. 한국전쟁 발발 3일 전인 1950년 6월 22일,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서울고검장으로 좌천시켰다. 검찰총장이 고검장으로 강등된 것이다.

김익진의 시련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1952년 6월 25일 발생한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도 그를 피고인으로 세웠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면소(공소권 없음) 판결을 내렸다. 그는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검찰 때문에 항상 염려를 품고 산다. 제2대 검찰총장은 그렇지 않은 검사와 검찰총장도 있었다는 위안을 우리에게 주고 떠났다. 그의 인생에 흠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만하면 훌륭한 검찰총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행적을 남긴 뒤 떠났다.

<앵커>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3살 아이를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식판 달린 의자에 앉히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의자에 앉혀져 꼼짝없이 3시간을 보낸 날도 있다는데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UBC 신혜지 기자입니다.

<기자>

점심 식사가 막 끝난 시간, 한 아이가 자기 몸보다 작은 ‘식탁 겸용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다음 날에도 또 다른 날에도 똑같은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

이제 막 등원한 아이가 교사의 손에 이끌려 외투를 벗자마자 바로 의자에 앉는 날도 잦아집니다.

하루는 아이가 답답한 듯 몸부림치다 옆으로 넘어지는데 교사가 덮개를 빼준 뒤에야 겨우 의자에서 벗어납니다.

28개월 된 A군은 길게는 3시간 동안 매일 이렇게 생활했는데 아이의 행동을 이상히 여긴 부모가 CCTV를 확인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A군 아버지 : 의자에도 잘 앉아 있던 애가 의자에 안 앉아 있으려고 하고요, 앉히려 하면 싫어하고. 카시트에서도 계속 벗어나려고 해요, 카시트 앉으면 울고 계속 짜증 내고.]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처음 찍힌 건 지난 9월, 어린이집이 보관하고 있던 60일 치 CCTV 영상 중 첫날입니다.

[A군 어머니 : 그중에 제일 잘 앉아서 앉힌 건가요? 하나라도 덜 움직여야 선생님들 손이 덜 가니까. 그게 혹시 맞는 건가요?]

[담임 교사 : 네. 맞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다른 학부모들에게 보낸 공지문에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어린이집 원장 : 특정 아이를 집중적으로 (괴롭힌) 친구가 한 명 있고요. 나머지 친구들은 자기 옆에 오면 얼굴을 당기고 옷을 당기고 밀고.]

문제가 된 담임교사 2명은 현재 사직한 가운데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최학순 UBC)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